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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에우리엔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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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1975년 10월부터 11월까지 [[청북전쟁]] 중 [[청평]] 중부의 도시 띠에우리엔에서 발생한 민간인 대량 살해 사건. [[루이나]]·[[북산]] 연합군의 회색의 불꽃 작전으로 도시가 점령되는 과정과 그 직후에 걸쳐 일어났으며, 청북전쟁 전 기간을 통틀어 단일 지역에서 발생한 최대의 민간인 피해다. 사건은 두 국면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시가전이 진행되던 10월 9일부터 23일까지 청평 당국이 사전에 작성한 명부에 따라 구금자와 주민을 처형한 국면이고, 둘째는 도시가 함락된 10월 25일부터 11월 6일까지 북산 국가경찰이 부역자 색출을 명목으로 즉결 처분을 시행한 국면이다. 여기에 18일간의 시가전 기간 루이나군의 포격과 항공 지원으로 발생한 민간인 사망이 더해진다. 사망자 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전투 기간 사망한 민간인의 총계로는 최소 18,000명이라는 수치가 널리 인용되나, 이 가운데 처형에 의한 사망이 어느 정도인지는 추정이 2,000명에서 8,000명까지 갈린다. 세 요인이 서로 겹쳐 있고, 그 비중을 가르는 것이 이 사건에 관한 논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이나 국내에서 이 사건은 전황의 문제가 아니라 참전의 정당성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1975년 11월 14일 종군기자 이브 L. 카롱의 보도로 사건이 알려졌고, 정부가 청평 측 책임만을 인정하고 연합군 측의 색출 작전과 포격 피해를 부인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2주 뒤인 11월 28일 벨포르에서 참전 제대군인과 반전 운동 학생이 결합해 [[10월 전선]]을 결성했다. 조직명의 10월은 이 사건이 일어난 달을 가리킨다. 2026년 현재까지 사건의 전모는 규명되지 않았다. 발굴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져 매장지 53곳에서 유해 3,900구가 수습되었으나, 실종 신고 후 확인되지 않은 인원이 4,700명을 넘는다. 루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1976년 이후 바뀌지 않았고, 청평 측 기록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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